오늘속의 영원, 영원속의 오늘을 추구하는 시인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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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강은
과거에 이어져 있으면서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강은 오늘을 살면서
미래를 산다.

강은
헤아릴수 없는 집합이면서
단일과 평등을 유지한다.

강은
스스로를 거울같이 비워서
모든 것의 제 모습을 비춘다.

강은
어느때 어느 곳에서나
가장 낮은 자리를 택한다.

강은
그 어 떤 폭력이나 굴욕에도
무저항으로 임하지만
결코 자기를 잃지 않는다.

강은
뭇 생명에게 무조건 베풀고
아예 갚음을 바라지 않는다.

강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다스려서
어떤 구속에도 자유롭다.

강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무상속의 영원을 보여준다.

프랑스가 선정한 세계 200대문인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 현대시단의 큰 발자취를 남긴 시인 구상
시인에게 낙동강을 끼고 있는 경상북도 칠곡의 왜관은 시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었으며 젖줄이었다. 인생의 존재론적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집약시켜 살아온 가톨릭 시인 구상.
그의 시는 가톨릭시즘을 형상화한 기독교적 세계관의 중심에 서 있다. 낙동강을 배경으로 한 연작시 ‘강’과 ‘초토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 ‘모과옹두리에도 사연이’, ‘인류의 맹점’ 등 그의 시는 존재론적 기반위에 미의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난 구상은 네 살 때 북한 함경도에 가톨릭베네딕트수도원 교육사업을 맡게 된 아버지 구종진을 따라 원산에서 자라게 된다.

“어머니 마흔넷에 난 소위 늦동이에요. 그래서 어려서 말하자면 집안에서 별호로 부르는게 ‘만득이’라고 늦을 만, 얻을 득자 해서 만득이라고 했어요.”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시적 감수성의 원천은 바로 어머니였다. 글과 서예에 능했던 어머니를 통해 천자문, 명심보감, 고시조, 신소설 등을 만나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사물에 대한 인식과 그 감동에 독자적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구상은 학문의 숭상과 인간의 마지막이 현세에 있지 않다는 가르침과 한국고유의 인간규범, 기풍 등을 맛보며 자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형 구대준은 가톨릭 사제가 되었으며, 한때 구상자신도 사제가 되고자 신학교 종교과를 다녔고 일본유학시절에도 종교과를 선택하게 된다. 정신적인 열망과 절망으로 가득한 시절 그에게 위안이 된 것은 바로 종교였다.

땅이 꺼지는 이 요란속에서도
언제나 당신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게 하옵소서.

내 눈을 스쳐가는 허깨비와 무지개가
당신 빛으로 스러지게 하옵소서.

부끄러운 이 알몸을 가리울
풀잎하나 주옵소서.

나의 노래는 당신의 사랑잉ㅂ니다.
당신의 이름이 내 혀를 닳게 하옵소서.

이제 다가오는 불장마속에서
노아의 배를 타게 하옵소서.

그러나 저기 꽃잎 모양 스러져 가는
어린 양들과 한가지로 있게 하옵소서.

1942년 동경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구상은 북한 함흥의 북선 매일 신문의 기자가 된다. 그 후 원산문학가동맹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해방을 맞으면서 해방 기념 시집 ‘응향’발간에 참여하게 된다. 시집 응향의 발간 후 북한의 신문과 방송은 시집 응향을 규탄하는 결정서를 발표하는 것과 함께 총체적인 검열사업을 하게 된다. 특히 시 ‘여명도’, ‘길’, ‘밤’ 등이 반동으로 불렸는데 응향 필화 사건으로 이 사건은 그가 월남하는 계기가 된다. 구상은 함흥에서 평생의 반려인 서영옥을 만나게 되는데 그 무렵은 평생을 따라다니던 폐결핵이 처음으로 발병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불운과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 아내의 헌신적인 보조가 있었기에 버틸수 있었다. 그는 ‘은행’이라는 시속에 그의 심정을 담아낸바가 있다. 서울로 온 구상은 문학지 「백민」에 ‘길에 채운 돌맹이’와 ‘어리석은 사나이와’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서울문단에 참여하게 된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독재정권의 전횡에 맞서며 한순간도 굴복하지 않는 삶을 살아온 시인 구상 1959년 이런 그의 모습을 대변해준 사건이 일어난다. 정치적으로 조작된 레이다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게 되었는데 그는 법정에서 조국에 모반한 죄목을 쓰고 유기형수가 되느니 사형이 아니면 무죄를 달라고 절규한다.

“ 단 15년이 아니라 단 하루라도 징역을 살기보다 차라리 사형을 내달라, 내달라“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월남이후 시인 구상은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는데, 의사였던 부인 서영옥은 이 자리에서 순심의원을 개원한다. 시인구상의 새로운 시의 자연물이 되었던 곳은 바로 칠곡의 왜관이었다. 낙동강변의 푸른 풍경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관수재, 이곳에서 구도의 시들이 잉태되고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1953년부터 74년까지 시인구상의 집필실이 되었던 관수재는 낙동강을 소재로 한 유명한 연작시 강과 밭 일기 등이 탄생된 곳이다. 또한 이곳은 천재화가 이중섭, 시인 오상순, 아동문학의 선구자 마해송 선생, 걸레스님 중광, 시인 채민순 신부, 운보 김기창 화백 등 평생을 아웃사이더라고 불리던 기인들과 많은 교감을 나누던 곳이기도 했다.
특히 화가 이중섭은 관수재에서 기거하기도 했는데 단란한 구상시인의 한때를 그린 ‘K씨의 가족’이라는 그림이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첫 시집 「구상」을 시작으로 사회평론집「민주고발」, 「초토의 시」, 연작시「밭일기」, 「강」등 사회풍자시, 산문시, 자연시, 선시 등을 발표해온 그는 일련의 시들을 통해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 인식의 추구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루어 왔다.
구상의 일생은 진리의 모색이고 그의 시는 그 길을 따라간 발자취의 기록이다. 종교적인 진리에 뿌리를 둔 시인구상은 영원의 바다로 들어가는 관문인 죽음조차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표현하며 오늘도 삶의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내가 이강에다
종이배처럼 띄워보내는
이 그리움과 염원은
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
그 어느때고 이루어질 것이다.

저 망망한 바다 한복판일는지
저 허허한 하늘 속일는지
다시 이지구로 돌아와설는지
그 신령한 조화속이사 알바없으나

생명의 영원한 동산 속의
불변하는 한 모습이 되어

내가 이강에다
종이배처럼 띄워보내는
이 그리움과 염원은
그 어디서고 만날 것이다.
그 어느때고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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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새마을문화과장민석054)979-6447
최종수정일 :
201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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